화타의 청낭서처럼 허망하게 사라진 장성택 측근 집단 망명설
‘엄청난 오보사태’에 정식 사과를 하지 않고 얼렁뚱땅 그냥 넘어가도 되는것인지 모르겠다
최현순 칼럼
빠른것이 세월이라더니 북한 김정일의 매제이자 3대 지도자인 김정은에게는 고모부가 되는 장성택이 전격 숙청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진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문득 1년전 이맘때를 돌이켜보면 이른바 ‘장성택 숙청설’은 정부발표로 먼저 국내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어 국내 언론,방송이 이를 보도하면서 설왕설래가 오가다가 북한이 이례적으로 ‘장성택 숙청’ 사실을 전격 보도하면서 ‘사실’로 확인이 되었다.
특히 종편 3개사(MBN,TV조선,채널A)는 ‘장성택 숙청설’이 전해진 직후부터 각종 북한전문가 및 탈북자들을 대거 초청 김정은의 장성택 숙청 배경과 이후 북한 정국의 변화에 대한 전망등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을 내놓는 ‘시사토크쇼’를 벌였다. 무엇보다 장성택 숙청은 이례적인 북한의 공식 보도로 확인이 되었고, 그 장성택이 세상을 떠난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난것이다.
작년 이 무렵의 특히 기억나는 일로는 장성택이 숙청된지 한 2-3주쯤 지났을 무렵부터 나돌기 시작한 ‘장성택 측근(가족포함) 70-80명’의 대거 또는 집단 망명설이 있었다. 그 정확한 출처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종편 3개사는 ‘장성택 측근 및 가족 70-80명 집단 망명신청’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다각적으로 분석해보는 대담프로를 내보냈으며, 이 설(說)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되면서 급기야는 집단망명을 신청한 70-80명중 ‘일부가 중국 모처에서 우리 정부당국과 접촉하고 있다’더라느니 ‘일부는 국내 대사관(또는 중국내 모 호텔 등)에서 신변을 보호중’이라느니 그야말로 장성택 측근중 상당수가 조만간 한국행에 성공할것처럼 대대적으로 떠들어댔었다.
헌데 무슨 ‘태산명동에 서일필’인가. ‘장성택 측근 집단 망명설’은 처음 보도가 나온뒤에도 한동안은 공식 확인은 되지 않은채 종편에 출연한 패널들의 개인적인 분석 수준의 이야기만 계속 오가다가 특히 몇몇 고위층 출신 탈북자들이 한두명씩 ‘솔직히 북한 상류층 정도 되면 젊은시절이라면 한때 혈기에 충동적으로 그런일을 저지를수 있을지 몰라도 나이 40 정도 넘어가면 처자식을 위해서라도 그런 결정을 하기 쉽지 않다.’느니 ‘북한체제의 속성상 해외에 나와있는 외교관들의 경우 북한 내부에 있는 자녀들을 빼내오기가 쉽지 않다.’며 한두명씩 발을 빼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장성택 측근 집단 망명설’은 처음 설이 떠돌았을때는 거의 사실에 가까운 일인양 구체적인 내용까지 이야기가 나오더니 몇주정도 지나서는 차츰 ‘회의론’을 내세우는 패널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러다 어느순간 흐지부지 쏙 사라지고 말았다.
무엇보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뒤 소위 ‘장성택 측근 집단 망명설’과 관련한 후속 보도는 종편이 일절 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애초의 종편 보도대로라면 장성택 측근이든 그 가족을 포함해서든 70-80명 정도의 북한 고위층,상류층 인사들이 대거 망명신청을 했다는 소린데, 그로부터 몇 달의 시간이 지나도 그중 단 몇 명이라도 한국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없는것이다. 얼마전에도 장성택 측근으로 아직 숙청당하지 않은 인사의 프랑스 유학중인 유학생이 북한으로 송환되기 직전 극적으로 탈출했다는 보도가 있긴 했지만, 이 유학생 역시 이후의 행방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있다.
한마디로 무슨 허무개그처럼 쏙 들어가버린 ‘장성택 측근 집단 망명설’이다. 처음 보도가 나왔을때는 그야말로 장성택 측근과 그 가족정도 되는 그야말로 북한 최상류급 인사들이 집단으로 한국으로 들어오는 전대미문의 사태라도 벌어지는줄 알았는데, 그 초창기 시끌벅적했던 종편의 보도 분위기와는 달리 ‘장성택 측근 집단 망명설’은 사실상 오보가 되어버린것 같다.
이 허무하게 흐지부지 사라져버린 ‘장성택 측근 집단 망명설’을 생각해보다 연상된것이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화타의 ‘청낭서’가 불태워져버린 일화다. 삼국지연의를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거기 나오는 당대의 명의 화타와 그의 죽음에 대한 내용을 기억할것이다. 대충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조조가 나이가들어 병을 얻어 특히 두풍(頭風)을 앓게되자 명의 화타를 부른다. 화타는 조조의 병을 살펴본뒤 이 병을 치료하려면 요즘의 뇌수술격인 ‘뇌를 쪼개서’ 치료해야한다는 처방을 내놓고, 이에 조조가 놀라 ‘나를 죽이려 하냐 ?’며 화타를 옥에 가둔다. 자신이 살아남기 어려움을 알게된 화타는 감옥에 갇힌 자신을 잘 돌봐준 옥리(獄吏) ‘오압옥’을 불러 자신이 평생을 공들여 지은 ‘청낭서’라는 의서가 있으니 그 의서로 공부를 해 한번 자신처럼 훌륭한 명의가 되어보는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그리고 곧 고향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 자기 아내에게 자신이 지은 ‘청낭서’를 오압옥에게 전해주게 하고, 오압옥은 그것을 건네받고 화타같은 명의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이게 웬걸 ? 그 청낭서를 집에 가져온뒤 얼마 지났을때 아내가 그 책을 모조리 불태워 없애버리고 만다. 만류하는 남편에게는 ‘그 책으로 공부해 훌륭한 의사가 된들 나중에 화타처럼 죽게되면 무슨 소용이겠냐 ?’고 자신이 그 책을 태운 이유를 말한다. 실로 후한 당대의 명의 화타가 평생을 공들여 썼을 자신의 신묘한 의술이 담긴 ‘청낭서’가 허망하게 불타 없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화타의 의술 대다수는 세상에 전해지지 않고 다만 타다남은 한두장에 적혀있는 닭이나 돼지를 이용 병을 고칠수 있는 한두가지 하찮은 의술 정도만이 전해진다는것이 그야말로 ‘허무하게 사라진’ 화타의 청낭서와 그의 신묘한 의술에 관한 이야기의 대강이다.
물론 삼국지연의는 어디까지나 소설이다. 다만 이 글에서 그걸 논하자는것은 아니니 정사(正史)와의 비교는 생략하기로 하고, 어찌되었거나 필자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종편이 처음엔 대대적으로 보도했다가 차츰 흐지부지되어 허망하게 사라져버린 ‘장성택 측근 70-80명 집단 망명설’이 마치 화타의 ‘청낭서’가 사라진것 만큼이나 허망하다는 이야길 하고 싶은 것이다.
만약 정말 장성택을 따르던 추종자든 그 가족이든 7,80명까진 아니더라도 단 몇 명이라도 한국행에 성공했다면 그들은 김정은 집권이후 가장 최근의 북한 권부내의 실상을 증언해줄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산이 되었을것이며, 또한 김정은이 숙청한 장성택의 측근중 단 몇명이라도 한국으로 망명해왔더면 그 자체 역시 북한정권에게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을것이다.
헌데 어찌된 영문일까. 장성택 숙청 한 일주일여가 지날때부터 어디서 전해진 속보인지 정보인지 한 2-3주는 종편이 떠들썩하게 제기했던 ‘장성택 측근 및 가족 집단 망명설’은 몇몇 탈북자 출신 패널들이 ‘집단 망명설’ 자체의 사실관계에 회의적인 모습을 보이며 발을 빼기 시작하더니 한 2-3주는 종편이 호들갑을 떨었던 ‘장성택 측근 및 가족 집단 망명설’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렸다. 마치 오압옥의 아내에 의해 불에 타 사라져버린 ‘청낭서’처럼 허무하게도.
무엇보다 ‘장성택 측근 및 가족 집단 망명설’이 어느정도는 근거가 있는 이야기였다면, 그 많은 사람들이 다 한꺼번에 한국으로 망명해오진 못했을지라도 한 몇 달이라도 지난뒤에 단 몇 명이라도 한국행에 성공했다는 후속보도 정도는 있었어야 하는것 아닌가. 하지만 화타의 청낭서도 하다못해 타다남은 마지막 종이 한 장에 남긴 사소한 의술 한두가지라도 전해진다던데, 7,80명이나 망명신청을 했다는 그 많은 장성택 측근중 그 말단급 인사거나 먼 친척뻘 되는 사람 단 한두명이라도 들어왔다는 후속 소식이 없다.
그나마 얼마전엔 그야말로 ‘화타의 청낭서’ 타다남은 마지막 한 장마냥 장성택의 아직 숙청이 진행중인 측근 인사의 자녀인 프랑스 유학생 한명이 북으로 송환도중 극적으로 탈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더니, 이 역시 한 며칠가서는 흐지부지 되어버리고 그 유학생이 어찌되었는지 후속 소식이 없다. ‘화타의 청낭서’ 마지막 한 장만이라도 건질수 있게 되는건가 내심 기대했건만 그 한 장마저도 소식없이 그야말로 모두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아무래도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장성택 측근 및 가족 70-80명 집단 망명설’은 종편의 오보였던것이 틀림없는것 같다. 어쨌거나 상식적으로 그만한 인물이 숙청을 당했다면 그로인해 화를 입을까봐 한국으로 망명신청을 해오는 사람이 몇몇이라도 있을 가능성은 누구나 충분히 상상해볼수 있는 일이며, 여하튼 망명을 시도했다는 사람이 애초의 보도대로 7,80명이나 된다면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오진 못한다 할지라도 최소한 몇 명은 한국행에 성공했다는 후속 이야기가 몇 달후에라도 전해져야 정상적인것 아닌가. 하지만 최소한 1년전 연말 나돌며 종편이 잔뜩이나 떠들썩하게 호들갑을 떨었던 ‘7,80명 집단 망명설’과 관련해서는 그와 관련된 그 어떤 인사 한두명도 이후에 한국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없다.
종편은 이 ‘엄청난 오보사태’에 정식 사과를 하지 않고 얼렁뚱땅 그냥 넘어가도 되는것인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종편의 입을 통해 먼저 나왔고 당신들이 한 2-3주는 오만 북한전문가.탈북자 출신 패널들을 잔뜩 초청 호들갑을 떨었던 소식(?) 아닌가. 헌데 그 충격적인 사건을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떠들어대더니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특히 탈북자 출신 패널들을 통해 ‘회의론’을 조금씩 흘리기 시작하더니 ‘집단 망명설’ 자체가 어느순간 소리소문 없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종편의 이와같은 행태는 분명 시청자에 대한 무례고 결례다. 여전히 종편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진보진영은 그렇다 치더라도 최소한 종편에 어느정도 애정이나 관심이 있는 중도 내지 중도보수성향 시청자들을 위해서라도, ‘장성택 집단 망명설’에 어느정도 관심을 기울이고 지켜봤을 시청자들을 위해서라도 이에대한 최소한의 입장표명이나 사과성명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것 아닌가. 종편의 이런저런 논란은 전부 차치하고라도, 최소한 종편을 조금이라도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켜본 시청자들 앞에서는 어느정도 예의를 지켜줘야 하는것 아닌가. 도대체 당신들이 1년전 장성택 숙청소식이 전해진 얼마후부터 한 2-3주는 떠들어댔던 ‘장성택 측근 및 가족 집단 망명설’은 대관절 어찌된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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